차태림양 천개의 바람
고(故) 이보미양
김장훈은 이보미의양의 거위의 꿈이라는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만들면 오히려 보미 양의 가족들이 더 슬픔에 빠지고 더 눈물 속에 살게 되면 어떡하나’하는 고민이었다
면서“일단 작업을 해보겠노라고 말씀드리고 녹음을 하면서 이 노래가 보미의 가족들에게 또 다른 유가족들에게 슬픔보다는 위안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술적 어려움에 대한 해결은 신해철 씨의 도움을 받았다. 본인의 6년만의 신곡활동을 뒤로 하고 녹음실에서 열흘간 밤을 새워 작업해준 신해철 씨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고(故)박예슬양
단원고 2학년 3반 17번 박예슬...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엄마 금방 구조되어서 나갈게,
걱정하지 마" 라며 엄마를 안심시켰던 착한 딸,
아빠 생일 때마다 친구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도록 부탁했던 속깊었던
그 소녀는 끝내 살아서 부모의 품에 안기지 못했지만,
뜻 있는 여러 어른들이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그녀의 못다 이룬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자그마한 전시회를 마련
고(故)전영수양
어머니는 "그 복잡한 역사용어를 노래처럼 부르곤 했다. 최근에도 꼭 역사 선생님이 되겠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하며 영정사진 속 딸의 얼굴만 어루만졌다.
역사선생님이 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전양의 어머니는
수업 중에 역사시간이 제일 재밌다며 우리나라 역사 용어를 술술
이야기하던 딸의 모습을 회상했다.
고(故) 허유림양
고 허유림양의 이모와 언니가 손에 케이크를 든 채 하늘공원을 찾았다.
이날은 허양의 18번째 생일이라고 했다.이렇게 네 명이 친하게 지냈어.”
동생의 납골함 아래 케이크를 둔 언니는 이모에게 함께 잠들어 있는 동생 친구들의
납골함을 가리켰다.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납골함을 바라봤다
잘 가, 다음 생에는 더 좋은 곳에서 살자.”(고 허유림(17)양 어머니)
고(故) 양온유양
온유는 사고 직후 갑판까지 올라왔다. 계속 갑판에 남아 있었다면 헬기로 구조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래쪽 선실에서 터져 나오는 친구들 울음소리를 듣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다시 선실로 내려가고 온유는 살아돌아오지 못했다
고(故) 이수진양
시: 영원한( 이사)
고(故) 최혜정 선생님
최혜정 교사는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한 교사들은 참스승의 길이 무엇인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였다. 교직에 대한 사명감, 제자 사랑을 넘어 인간에 대한 믿음을 되찾게 해주었다
고(故) 유니나선생님
스승이자 친구였던 유니나 선생님....
시작할 때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던 5층 객실에 있었고, 배가 기울자 4층 객실로 내려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고 탈출하라"고 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때 "3층에도 학생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고인은 다시 3층으로 내려갔고, 당시 구조된 학생들은 그것이 고인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구조·수색팀이 발견했을 때 유니나 교사는 구명조끼도 입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호 사건 54일만에 발견된 유니나선생님은
시체 상태가 너무 부패돼 외관으로는 식별도 불가능하고 지문 채취도 어려웠었다고 함
그런데도 바로 확인이 가능했던건 남자친구와 함께 끼고 있었던 커플링
신부님, 걱정하지 마세요. 18일에 일찍 도착하면 성 금요일 예식 때 복사 꼭 설게요.”
안산 단원고 2학년인 고 박성호(임마누엘, 18, 수원 선부동성가정본당)군은 끝내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세월호에 올랐다가 변을 당했기 때문이다. 박군은 세월호 침몰 8일 만인 4월 23일 시신으로 발견됐다.
4월 30일 안산 한도병원에서 만난 박군 어머니 정혜숙(체칠리아, 46)씨는 링거 바늘을 꽂은 채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머리에 흰 리본을 단 정씨는 기자에게 힘없이 인사를 건넸다. 함께 만난 누나 박보나(보나, 21)씨는 박군의 사진과 자료를 한 움큼 가지고 나왔다. 박군이 교리시간에 활동했던 학습지에는 ‘처음으로 신부님이 되고 싶다고 느꼈을 때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것 같았다’고 쓰여 있었다.
박군의 장래희망은 사제였다. 박군은 어릴 적 자동차에 치이고도 다치지 않았던 경험을 하느님의 기적이자 부르심이라고 여겼다. 이것을 계기로 사제성소를 키워온 박군은 ‘성호’(聖灝)라는 이름처럼 하느님의 뜻을 펼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복사와 예비신학생으로 활동하며 꿈을 키워 나갔다.
본당 활동이라면 가족 모임을 미루더라도 참여했던 박군은 성가대와 전례부, 율동부, 레지오 마리애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누나 박씨는 “수학여행 가기 전 주에 성호가 성가대에서 독창했는데 본당 어른들에게 칭찬받았다고 많이 기뻐했다”고 기억했다.
안타까운 사연들
(故)제세호
단원고 2학년 8반 제세호 학생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별명이 새우 였던 웃을 때 가장 예뻤던 세호야. 그곳에서는 누구와 맛있는거 먹으러 다니니??
네가 웃는 모습을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았어. 우리가 많이 닮아서 사람들이 남매냐고 많이 물었었지? 우리 착한 세호가 없으니 같이 ...웃을 사람도 없어. 먹고싶은게 있는데 누구랑 먹을러 가야할까...
하늘나라에서도 슬리퍼 구겨신고 다니는건 아니지? 세호야~ 누나가 평생 우리 세호 사랑해.
나중에... 아주 나중에 누나가 우리 세호 만나러 갈때까지 거기선 아프지도 춥지도 슬프지도 무섭지도 않게 지내고 있어줘. 많이.. 아주 많이 보고싶어.
ps. 지금도 많은 분들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친구들을 잊이 않고 기억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그리고, 우리 세호에게 누나가 평생 사랑한다고 꼭 전해주세요...
혼자남은 권지연양
故 한윤지 (엄마)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한 권혁규(오빠) 권재근(아빠)
혼자 구조 5세 지연이 “엄마 아빠 오빠 왜 안와?”
지난 16일 세월호가 기울면서 침몰하기 시작할 때 박 군은 여학생들에게 탈출을 양보한 후 갑판에 홀로 남아 있던 권 양을 구조했다. 박 군은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순간 물에 흠뻑 젖은 채 갑판 위에서 울부짖는 권양을 발견하자 지체 없이 들쳐 안고 구명보트에 뛰어올랐다. 박 군은 “아기가 물에 흠뻑
젓은 채 울고 있기에 아무 생각이 없이 안고 구명보트로 뛰어내렸다”며 “섬에 도착해서 구조대원들에게 품에 안고 있던 아이를 건넸다”고 말했다.권양의 가족은 이날 제주도에 마련한 새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던 중이었다. 아버지 권재근(50)[실종]씨, 엄마 한윤지(29)[사망]씨, 오빠 권혁규(6) 군 등 일가족이 함께 배를 타고 있었다. 권씨 부부는 제주로의 귀농을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세월호 참
사로 부모와 오빠 등 가족 모두를 잃은 권지연양이 생활고로 최근 지방자치단체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양의 아버지(51)는 아직까지 실종상태다. 아빠의 시신이 수습되지 않은 실종 상태여서 위탁가정 지정이 안됐기 때문에 매월 12만원인 양육보조비는 아예 나오지 않는 상태다.
권 양은 매일 아침 8시 어린이집으로 가서, 저녁 9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에 고모(59)가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온다. 매주 목요일 오후 정신과 심리치료를 받으러 송파구 아산병원으로 간다. 하지만 이 치료도 오는 12월까지만 예정돼 있다. 황 담당관은 “지연양이 또래에 비해서 덩치가 작다”면서 “나이가 어려서 아직 부모와 오빠의 죽음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권 양은 부모와 오빠를 모두 잃어 배상금이 나오면 희생자 1인당 3억 5000만원씩, 총 10억 5000만원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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