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사회 경제

1989년.. 히로히토 덴노 사망 당시 일본의 풍경..

♥1004 2006. 9. 5. 06:05

서울 올림픽이 열린 1988년 가을..

 


일본인들 내면속에 천황을 확인하는 계기가 주어졌다..


올림픽이 시작된 이틀 후..

 


히로히토는 위독했다..

 


62년의 재위기간 동안 한때는 신성불가침의 살아있는 신이었으며.. 패전 후 인간선언을 하고 상징적 존재가 된 히로히토..

 



일본인들은 슬퍼했다..



매일 수십만의 인파가 덴노의 쾌유를 빌러 황궁을 찾았다.


매일 임시각료회의가 열리고..


다케시다 수상은 모든 국내외 일정을 포기했다..


카메라는 24시간 황궁에 집중되있었다.


신문에서는 매일 덴노의 체온,맥박,혈압,수혈량등을 일기예보를 알리듯 보도했다.


그것은 일본인들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현상이었다..

 

각종 콘서트와 행사가 취소되고..

6년만에 우승한 야구팀의 축하연도 취소되었다.


아예 '자숙'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히로히토가 병석에 누운지 3달째 되던 12월..


자숙하던 우익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나가사키 시의회에서 시작되었다.


'덴노에게 전쟁 책임이 있느냐 ? '는 공산당 의원의 질문에.. 시장이

'전쟁 책임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그가 자민당의 보수우익계열의 인물임을 감안할땐 놀라운 일이었다.


곧.. 발언을 철회하라는 항의가 쏟아졌다.


비난의 목소리는 구호로만 끝나지 않았다..   총알이 날아든 것이다.


덴노에게 반기를 든 댓가는 컸다..  총알은 폐를 관통했지만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해외 언론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들에게 히로히토는 전쟁을 일삼은 사악한 군주였으며..


죄값을 받지 않은 범죄자였다..

히로히토는 1901년 메이지 덴노 아들.. 요시히토 황태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방탕한 황태자는 후궁들을 시켜 어린 아들에게

성을 가르치고 술을 먹이곤 했다. 이 영향으로 히로히토는 평생 금욕적인

생활은 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생물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고..

실제로 생물학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황태자가 된 히로히토는 병약한 아버지 다이쇼 덴노를 대신해

섭정을 하다가.. 1926년 124대 덴노로 즉위했다.


조선의 식민지 지배로 시작된 일본의 침략전쟁에서 히로히토는

최고의 군통수권자였다.  군국주의에 의해 장악당한

그의 치세는 '평화와 번영'이라는 뜻의 연호  '쇼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신화를 바탕으로한 덴노의 절대적권위는 국민들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했고 수많은 희생을 낳았다..


그러나 그는 패전 후.. 단지 살아있는 신의 지위를 포기함으로서 면죄부를

얻었다.

 







 

히로히토는 여전히 일본국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이었다..

 

미국은 히로히토를 전범으로 처벌하는 대신.. 최대의 협력자로 이용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의 재무장 필요성을 느낀 미국은 수감중이던 A급 전범들을 정계에 복귀시키고..

CIA는 이에 막대한 자금을 제공했다.

 

1989년 1월 7일 .. 히로히토는 마침내 88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장례식은 성대하게 치뤄졌다.

일본인들은 애통한 눈물로 자신들의 덴노를 떠나보냈다. 덴노는 여전히 일본을 통합하는 강력한 존재였다.


방송사들은..24시간 히로히토에 관한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내보냈고.. 이로인해 사상 최고의 비디오 대여율을 기록했다.

 

 

1990년.. 아키히토가 125대 덴노로 즉위했다.


66개국의 국가원수와 158개국의 대표가 즉위식에 참석했다.

 

일본 언론은 덴노의 즉위식이.. 엘리자베스2세의 대관식보다 성대했다고 보도했다.


수상은 즉위식에서 만세를 외쳤고.. 일부 시민단체는 이를 위헌이라 소송했다.

 

비극은 덴노의 이름으로 미화됐고..  덴노의 이름으로 망각됐다.


패전을 교훈삼아 21세기 슈퍼파워 미국을 추종하며..


세계 최고 선진국 중 하나로 번영을 누리는 일본 . .


그 다음.. 그들의 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자유와 평등, 인간의 존엄성, 세계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질서는 천황제와 공존할수 있는것일까 ..

 

일본은 아직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